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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이른 아침

굳게 닫힌 창문 틈으로 한기가 기어이 비집고 들어 온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온 한기는 이내 갈길을 잃고 창문곁에 누워 있는 얼굴위에서 흩어지지지만 단잠을 깨우기엔 부족하지 않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본다
어둠속에서 한참을 형체를 찾아 응시한 끝에,
힘겹게 아래 위로 수평을 맞추고 있는 시계바늘을 찾아냈다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따스한 온기 속에서 몇번을 뒤척이다 포기한다

잠이 완전히 깼을 무렵, 다시 한번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지루한 시간에 꽤나 오래전에 CD를 넣어두어 무슨 곡이 나올지도 모르는 오디오에 전원을 켠다
익숙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포트에서 딸각 하는 소리가 들린다
뜨거운 물에 티백 하나를 슬며시 밀어 넣고 침대에 걸터 앉는다

아직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창문 밖에서 투둑투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 이미 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을 깨운 차가운 기운을 생각하며 혹시나 하는 바람에 창 밖을 한참 바라본다
하지만 아직 눈이 내리기엔 부족한 모양이다
잠든 사이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은 아직도 설레임에 대상이고 기다려 지는 모양이다
약간의 실망을 감추고 차를 홀짝거린다

비가 오는 아침이면 신기하게도 Brian Crain 의 Butterfly Waltz 라는 곡이 생각난다
비 오는 날의 특별한 기억이 배어 있는 곡은 아니다
그냥 생각이 날뿐
아마도 제목과는 상관없이 이 곡은 나에게 비의 이미지로, 세차고 거친 그런 비가 아닌 아주 조심스럽게 내리는 이른 아침의 비의 그런 것으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반쯤 마신 잔을 조심스레 내려 놓고 침대 발께에 있는 건반에 손을 얹는다

이른 아침이라 뻣뻣한 손가락은 쉽사리 말을 듣지 않지만
이 곡은 그런 손가락으로도 연주하는데는 어렵지 않다
두세번 반복해서 연주해 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으니 그냥 복잡하다고 해두자
그렇게 작지만 폭풍같은 감정이 지나가고
다시 차를 홀짝 거린다
조금 식어버린 차는 의도치 않은 차가움을 안겨준다
미련없이 남은 차를 흘려 보낸다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어슴프레 날이 밝아 온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

우습다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가끔은 버스를 타고...

직접 운전을 하고 자주 다니는 길을
가끔 버스를 타고 지나가 보자.
아스팔트의 시커먼 색을 보며 지났던 그 길을
이제는 다른 색으로 기억하게 될것이다.
짙은 초록색으로, 고즈넉한 금빛으로, 강렬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붉은색으로...

물론 모든것이 다 머리속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아스팔트만 보고 가게 될지라도 느낌만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
그 느낌을 얻은 것으로 된것이다.
이제는 그 길이 오롯이 내 것이 된 것같은 느낌...


가끔 내가 살아 가고 있는 이 길을 내 앞에 있는 좁은 시야가 아닌 넓은 시야로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가'
이런 거창한 문제를 풀어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사소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
'내가 무엇을, 누구를 잊고 살고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좀더 넓은 시야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알고 싶은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늘도 노력해야 할 문제....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Monologue in Autumn

어쩐지 글이 쓰고 싶어졌어
무엇을 해도 마냥 즐겁지 않고
불꺼진 집에 밤 늦게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그때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지

아...
가을이구나 했어...

가끔씩 이유없이 울컥 할 때도 있어
음악을 들으면 더 울컥 해 지지만
그래도 음악 없이는 못 견딜것 같아

그때
길 가에서 찌르르 소리를 들었지

아...
가을이구나 했어...


하지만
마냥 우울하거나 힘들거나 하지는 않아
마냥 지치거나 외롭거나 하지도 않아

가을이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니까


이제 곧 괜찮아질 꺼야
좀더 나아질 꺼야
빨갛고 노란 흥겨운 낙엽을 볼 수 있을 때가 되면
즐거워질 꺼야
다시 힘이 날꺼야

가을이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니까

2011년 6월 13일 월요일

제천에서의 한달

어느 덧 제천으로 옮긴지도 한달하고도 2주가 지났습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옮긴 제천은 제 생각보다도 맘에 드는 곳입니다.

근처엔 C.C 도 많고, 여름에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호수도 있으며, 겨울에 즐길 수 있는 스키장도 한시간 거리에 있군요~
서울도 2시간이면 갈 수 있구요~


하지만...
이런 것들 보다 더 저를 즐겁해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퇴근 하기 위해 별 생각없이 병원 문을 나서던 5월말의 어느날
처음엔 날카롭게, 하지만 이내 은은하게...
온 도시를 가득 메운 달콤한 향기
10년 넘게 맡아본 적 없는 아카시아 향기 였습니다
5월말 그렇게 달콤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주말 서울에서 돌아오던 밤 늦은 시간...
집에 다가가갈 수록 들리던 나즈막한 소리
이내 몸집을 부풀린 이 소리는 개구리가 우는 소리였습니다...
아주 예전 꽤나 시끄럽게 여겼던, 그리고 흔하게 들었던 개구리 우는 소리를
역시 10년 넘게 잊고 살아왔었네요...

늦은 저녁 양팔 사이를 휘돌아 나가는 아카시아 향기와
귓등을 스쳐지나가는 개구리 울음은
저를 예전 10대로 떠밀어 냅니다...


제천~
기분이 좋아 지는 곳이네요! ^^;

2011년 3월 21일 월요일

봄비 내리는 이른 아침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소리없이 살금살금

어슴프레 동이 틀 무렵 눈이 떠졌다.
빗소리에 눈이 떠진 것은 아니다.
비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주었으니까...

벌써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무섭게 불어대던 바람, 낮은 돌담, 높게 출렁이는 파도, 할머니들의 사투리
이젠 눈을 감아도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어느 할머니의 집처럼 너무나 익숙한 모습 들이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동안 못해본 것 들을 꼭 해보리라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갑자기 주어진 무한대에 가까운 여유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내 이런 걱정은 접었다.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
이것 또한 그 동안 못해본 것 중에 하나이니까...

문득 비오는 봄의 우도를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려던 마음도 있었지만, 언제 누가 찾아올지 모르니까 접어두고
차에 시동을 걸고 아주 천천히 비가 내리는 속도 만큼 천천히 출발했다.

이런 기분 좋은 드라이브에는 반드시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필요한 것.
Isao Sasaki(イサオササキ) piano 연주 CD 를 player에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나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물기를 살포시 머금은 우도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제일 먼저 내가, 오롯이 나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기분좋은 설렘이 함께했다.

창문을 살짝 내렸다.
비가 좀 들어 오면 어떤가.
이것 역시 앞으로 다시 경험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우도의 봄비를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니 즐거운 일이 될 수 밖에...

역시 그렇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흔한 것, 별것 아닌 것에도 의미를 두게 만든다.
돌담 아래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들도, 늘 그자리에 있었던 등대도,
늘 타고 다니던 도항선에도, 항상 푸른 빛을 내던 바다도
오늘만은 특별하고 또 특별하게 내 가슴으로 옮겨진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소리없이 살금살금...

하지만...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하고 즐거운 노래로 들렸다...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Laos 봉사의 개인적 후기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깊게 알기란 힘든 것 같다.

이쯤에서 돌아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느새 제자리 걸음 아니 오히려 뒷걸음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인간 관계의 정리'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가까운 아니 지금 현재 가까운 사람은 앞으로 더 가까워 질 것이고, 지금 현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앞으로 잊혀질 가능성이 크겠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sequence 인지 모르겠으나 그 sequence 에 들어 있는 algorithm 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렸을 때, 적어도 내 머리속이 이해타산에 돌아가기 보다는 인정에 더 끌릴 시기에는 순수한 인간관계, 내 감정에 충실하고 한번 정립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 '의리'에 의한 것이 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리저리 재고 두세번 생각하고 의심하고...
가슴에서는 이건 아니지 않느냐, 너 좀 재수 없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머리에서는 이미 계산 끝난 상태...
어쩌면 이렇게 변해 가는 내가 싫어서, 아니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서 예전 좋아했던 많은 것들에게 '미련'을 두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Laos 에 다녀 왔다.
의료 봉사라는 거창한, 아니 남들 보기에 있어보이는 이유로...
훗...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난 그저 나를 다시 찾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20대 초반 '봉사'라는 순수한 열정을 쫓던 나를 다시 발굴해 내서 지금의 나에게 입혀보고 싶었겠지... 그리고 다시 한번 그때의 나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일 테지.
하지만 결국 그때의 나를 오롯이 찾는 것에는 실패했다.
사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행여 찾는다 해도 지금의 나로서는 그때의 나를 제대로 맞이할 수 없는 일일테고...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최고의 성과를 얻었다.
잃어버린 나를, 잊혀진 나를 찾으러 갔던 그곳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사람들을 찾았다.
잃어버렸던 사람들...
잘 알고 있었고, 손만 뻗으면 손을 잡아줄 가슴이 있는 사람들.
왜 나는 그들을 바라볼 생각도, 손을 뻗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거지 같은 성격 탓에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가가지 못하고, 나를 다 보여주지 않고,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번 일탈을 통해서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
난 너무 옹졸하고 좁아터진 곳에 나를 스스로 가둬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빈틈없는 corner 에 스스로를 몰아 놓고선 끊임없이 순수함을 강요하고, 변하지 않게 감시하고, 이상적인 나를 말도 안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바로 옆에 나를 믿어주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할 만큼....


이제
조금씩 변해야 겠다. 지금의 나를 예전으로 돌리기 힘들다면...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고 손을 내밀고 그들의 세상으로 나를 던질수 있는 그런 '나'란 존재로 만들어야 겠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그곳에서 나는 지금의 나를 내려 놓고, 예전의 나 대신 새로운 나를 들쳐 메고 왔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도움을 주기 보다는 도움을 받고 왔다.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겨울 문턱의 밤

미친듯이 외로움이 어깨동무를 하고 다가올때면
비로소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은
음악과, 반쯤 남아 있는 술...

그렇게 한바탕 카다르시스를 느끼고 나면
남은 것은 허무함, 죄책감, 외로움....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달았고,
나름의 처세에 대하여 만반에 준비를 갖추었다고 생각할 때 쯔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부질 없으며, 웃기지도 않았다는 것을 세상은 또한번 깨우쳐 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은
내가 한때는 여러 사람에게 기억되고, 중요한 사람이었으니
지금의 외로움과, 고립이 더욱 더 깊이 사무친다는 생각 뿐...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어느 누군가에게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채 잊혀 진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역시 무서운 존재다